신용회복경험담
아이를 믿었고, 끝까지 책임지고 싶었습니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5.0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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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평범했던 은퇴 후의 삶
저는 62세, 퇴직 후 아파트 단지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평범한 남성입니다. 젊을 때부터 성실히 회사 생활을 해왔고, 자녀 셋을 모두 장성하게 키우는 게 제 인생의 가장 큰 자랑이었습니다.
퇴직 후에는 작은 아파트에서 아내와 함께 조용히 살며, 자식들 뒷바라지를 해주며 노년을 보내려 했죠. 그렇게 나름 안정된 삶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내아이의 꿈을 응원한 결정이, 생각보다 무거운 짐이 되어 돌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2. 전개: 데뷔 실패, 남은 건 3,900만 원의 빚
막내아이는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단순한 꿈이라 생각했지만, 아이는 진지했고, 저도 “내 자식이니까 믿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서울의 연습생 생활은 비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학원비, 의상비, 촬영비, 교통비, 심지어 오디션을 보기 위한 비용까지. 처음엔 제가 모아둔 퇴직금 일부와 가족에게 빌린 돈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부족해졌고 결국 카드론까지 손을 댔습니다.
4년 동안 총 3,900만 원이 넘는 채무가 쌓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끝내 데뷔하지 못했고, 지쳐서 포기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때부터 현실이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자녀는 힘들어했고, 저는 스스로가 무책임한 아버지처럼 느껴졌습니다. 매달 밀려오는 이자와 독촉 문자 속에서, 노년의 삶은 더 이상 평온하지 않았습니다.
3. 위기: 병원비와 카드값 사이에서
결정적인 순간은 건강검진에서 고혈압과 당뇨 진단을 받으면서였습니다. 약값과 생활비도 빠듯한데 카드사에서 한 달에 몇 십만 원씩 빠져나가다 보니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다 병보다 빚에 먼저 눌려 죽겠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3개월 정도를 고민하며 숨기고 살다가, 결국 아내에게 털어놓았습니다. 다행히 아내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고 말해줬고, 그때 처음 ‘개인회생’이라는 제도를 알게 됐습니다.
막막한 마음으로 상담을 받았을 때, ‘이게 내 삶의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4. 해결: 변제 3년, 월 18만 원 계획 승인
상담을 받고 서류 준비에만 한 달이 걸렸습니다. 나이도 있고, 소득도 많지 않다 보니 자격이 될까 걱정했지만, 아파트 경비원으로 받는 월 180만 원 정도의 소득도 일정한 수입으로 인정됐습니다.
총 채무액 3,900만 원 중 약 60%를 탕감 받고, 나머지 금액을 월 18만 원씩 3년간 변제하는 계획으로 법원의 인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법원 출석 당시에는 솔직히 긴장이 많이 됐습니다. 판사님 앞에 서는 일이 처음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판사님께서 “회생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성실히 갚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말씀해주셨고,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가끔 서류가 빠지거나 다시 제출해야 하는 과정에서 당황도 했지만, 차근히 하나씩 준비해가며 마침내 인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5. 결말: 다시 찾은 일상, 다시 찾은 희망
지금은 인가를 받은 지 8개월이 지났습니다. 월 18만 원씩 성실히 변제 중이고, 무엇보다 심리적으로 많이 편해졌습니다. 무엇보다 가족들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이 가장 큽니다. 더 이상 숨기지 않아도 되고, 아내와 함께 식비를 조절하며 차근차근 살고 있습니다.
자녀들도 각자의 길을 찾아가고 있고, 막내도 “다시 공부해서 교사 준비를 해보겠다”고 하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큰돈은 아니었지만 저에게는 삶의 방향을 되돌릴 수 있었던 중요한 선택이었습니다.
저처럼 나이 때문에, 체면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개인회생은 포기의 사인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첫걸음입니다.
노년에 빚에 짓눌리지 말고, 제도를 활용해 다시 삶을 정돈해보시길 바랍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지금, 잘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