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2025.07.01 12:57

연구실과 알바, 그리고 나의 20대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7.0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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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연구실과 알바, 그리고 나의 20대

저는 27세, 이공계 대학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입니다. 실험실에서는 하루종일 데이터를 돌보고, 틈틈이 조교 일도 하며 살아가던 평범한 20대였습니다. 주말에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도 하며 나름 알뜰하게 살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박사까지 가는 게 내 길이 맞을까?’ ‘내 인생도 창업 한번쯤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단골로 다니던 프랜차이즈 샌드위치 가게가 문득 눈에 들어왔고, 매장 사장님의 권유도 있었죠. “대학가에 매장 하나 차리면 인건비만 잘 조절해도 월 200 이상은 남는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2. 전개: 창업이라는 이름의 시작과 끝

학업과 병행하려면 운영이 간편한 프랜차이즈가 낫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도움을 받아 보증금 포함 약 3천만 원, 여기에 인테리어, 물품 구입, 권리금 등으로 은행과 카드사에서 8천만 원가량 대출을 받아 창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과 너무 달랐습니다. 코로나 여파로 유동 인구가 줄어든 데다, 예상 외의 유지비(광고비, 로열티, 인건비)가 발목을 잡았죠. 결국 오픈 6개월 만에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주말이면 일하러 나가는 대신 배달 앱 리뷰에 직접 댓글을 달고, 점심 장사 끝나면 직접 청소도 하며 버텼습니다.

1년 반쯤 지나자 카드 한도는 모두 차고, 연체는 반복되었으며 총 채무는 1억 1천만 원에 이르렀습니다. 연구도, 수업도 뒷전이 되었고, 감정적으로도 무너지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3. 위기: 창업보다 더 무서웠던 현실의 무게

결정적인 계기는 어느 날 은행에서 온 압류 예고 통지서였습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 폐업을 결심했습니다. 매장을 넘기며 손해를 일부 보긴 했지만, 가장 큰 고민은 ‘이제 어떻게 이 빚을 갚지?’였습니다.

그때 지도교수님께 모든 상황을 털어놓았습니다. 예상과 다르게 교수님은 질책보다 “너무 어린 나이에 혼자 감당하려 하지 말라”며 개인회생이라는 제도를 알려주셨죠. 그렇게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제 심정은 자존심이 다 무너진 상태였고, 절박함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4. 해결: 질서와 숨통이 생긴 시간

개인회생 상담 후 준비 서류를 모으고 신청까지 약 3주가 걸렸고, 법원 심리를 포함해 인가 결정까지는 약 5개월이 소요됐습니다. 다행히 성실히 제출한 자료와 창업 실패라는 사유가 인정되어 월 22만 원씩 3년(36개월)간 납부하는 변제계획이 인가되었습니다.

법원에 출석하던 날, 주변에 제 또래는 거의 없었고, 순간 ‘내가 왜 여기에’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판사님은 “이 제도는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성실히 살아오셨으니 기회는 주어집니다”라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그 한마디가 아직도 마음 깊이 남아 있습니다.

생활비는 여전히 빠듯하지만, 이제는 연체도 없고, 독촉도 없습니다. 매달 정해진 금액만 납부하면 되기에 마음의 평온을 찾았습니다.



 


5. 결말: 실패는 끝이 아니라 전환점

현재는 변제 1년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여전히 대학원 연구실에서 공부하며, 창업 경험을 바탕으로 논문 주제를 ‘청년창업 리스크 분석’으로 바꿔 준비 중입니다. 실패는 고통스러웠지만, 오히려 제 연구에 중요한 방향성을 준 셈이죠.

저처럼 젊은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진 분들이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개인회생은 포기하는 길이 아니라, 다시 걷는 길입니다.
자책보다 중요한 건 회복의 의지이고, 그 첫걸음을 떼는 용기입니다.

저는 지금, 다시 걷고 있습니다. 조금 더 단단하게, 조심스럽게, 그리고 희망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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