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30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의 개인회생 이야기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8.0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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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 자유롭고 평범했던 20대의 나날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은 쉽지 않았지만, 젊은 시절엔 그 자유로움이 좋았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작업실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리던 날들, 전시회 준비에 밤새워가며 일하던 시간들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수입은 일정치 않았지만, 때때로 들어오는 기업 콜라보나 출판 일로 생활은 나름 꾸려졌고, 연애도 시작됐죠. 20대 후반, 마음이 잘 맞던 사람과 결혼을 했고, 그땐 그게 인생의 정착인 줄 알았습니다.
전개: 이혼과 함께 무너진 경제적 기반
하지만 결혼 생활은 2년도 채 가지 못했습니다. 예술가로서의 불안정한 삶이 상대방에게 큰 스트레스였고,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채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습니다. 위자료와 재산분할로 인해 약 3천 5백만 원의 부채가 발생했고, 생활비를 카드로 돌리면서 3년 반 동안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어느새 총 채무는 7,800만 원. 은행 대출이 2곳에서, 카드 연체도 생기기 시작했죠. 작업 의욕도 잃고, 사람들과의 연락도 끊겼습니다. 이따금 들어오는 프리랜서 작업으로는 이자조차 감당이 안 됐고, 하루하루가 버티는 싸움이었습니다.
위기: 더는 숨길 수 없었던 현실
결정적인 계기는 카드사로부터 소송 통보를 받은 날이었습니다. 그날, 도저히 손을 떨며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습니다. 아, 정말 끝이구나 싶더군요. 상담을 받아보자는 생각은 몇 달 전부터 있었지만, 자존심과 두려움에 미뤄왔습니다. 친구 한 명이 조심스럽게 “요즘은 개인회생 제도도 있으니까 상담만이라도 받아봐”라고 말해준 게 계기가 되었죠. 혼자 검색하고 전화 상담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나도 구제받을 수 있구나’라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처음 상담 받으러 갔을 땐 ‘내가 정말 이 지경까지 왔나’ 하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에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해결: 개인회생 신청에서 인가까지
상담부터 법원 인가까지는 약 4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변제 계획은 총 3년 동안 월 29만 원을 납부하는 조건이었고, 변제 기간이 끝나면 남은 채무는 면책되는 구조였죠. 인세나 프리랜스 수입이 일정치 않다 보니 증빙 과정이 꽤 까다로웠고, 법원에서도 몇 차례 보완 요청이 있었습니다. 서류 준비와 진술서 작성도 쉽진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제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법원 출석 때는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재판장이 “진심으로 변제할 의지가 있으신가요?”라고 물었을 때, 순간 울컥했죠.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게만 해주세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결국 인가 결정이 내려졌고, 인생에서 처음으로 ‘재시작’이라는 단어가 실감났습니다.
결말: 다시 살아갈 힘, 그리고 붓을 드는 용기
지금은 개인회생 변제를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매달 29만 원씩 꼬박꼬박 납부하면서도, 그림 의뢰는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생활은 여전히 빠듯하지만, 불안한 미래 대신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요즘엔 소규모 클래스도 운영하면서 새로운 수입원을 만들고 있고, 예전처럼 전시를 준비할 여유도 조금씩 생기고 있어요. 목표는 변제 종료 후, 자신의 경험을 담은 그래픽 에세이를 출판하는 것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지금 절망 속에 있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개인회생은 끝이 아니라, 회복의 시작’이라는 걸요.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결국 지나갑니다. 저처럼, 당신도 다시 붓을 들 수 있을 거예요.